[청강대 합격생 복원작] 원작의 그늘에 잡아먹히면
- 등록일2025.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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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에 잡아먹힌 상희가 처음부터 불행한 것은 아니었다. 가장 좋아하는 소설, 심지어 여주인공에 빙의했고, 전생에 대한 미련도 없었기에 빠르게 적응을 마치고, 상희의 최애이자 원작의 흑막인 제파르를 찾아 헤맸다. 그가 죽는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
그가 흑막이 되는 원인을 제거했고, 여주인공에게 찾아오는 시련인 부모님의 죽음과 가문의 몰락도 막았다.
상희의 행복이 깨진 것은 원작이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최애와 함께하게 된 시작에 행복했던 상희는 평소와 다른 주변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했고, 그것은 결국 패착이 되었다.
행복하기만 해야 했을 원작의 시작, 데뷔탕트. 원작이 시작하며 깨어난 세계는 전개가 어긋났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원래대로 되돌리기 시작했다. 상희가 바꿔놓은 모든 것들을 원작대로 이뤄지게 한 것이다. 처음은 여주인공의 파트너 자리였다.
이 세상이 정한 흑막의 자리는 여주인공의 옆자리가 아닌, 늦게 찾아온 불청객, 혹은 이었기에 여주인공과 함께 입장하지 못하도록 원작이 개입해 흑막을 방해한 것이다.
비어있던 여주인공의 옆자리는 때마침 홀로 입장하려던 남주인공의 차지가 되었다. 상희가 원하지 않았지만, 이 또한 원작의 개입으로 흐지부지 넘어가게 되었다.
뒤늦게 도착한 흑막은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의 다정한 모습에, 애정이 식었다는 오해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상희는 오해를 풀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상황은 악화되었다.
원작은 이 세상 그 자체였기에 어디서도 그늘을 피할 수 없었고, 그 상황에서도 원작은 착실히 전개되었기에. 여주인공과 흑막은 가까워지지 못하고 점점 더 멀어졌다.
상희가 막아놓은 불행은 둑 터진 강물처럼 밀려왔다. 부모님의 죽음도, 가문의 몰락도 모든 것은 정해진대로 이루어졌고, 남자주인공은 그때마다 나타나 여자주인공을 구원했다.
착실히 전개되는 일련의 상황들은 그 어떤 발악으로도 뒤틀 수 없었고, 그것을 처절히 깨달았을 때가 돼서야 자신을 죽이고 끈 없는 마리오네트가 되어 여주인공 프레제로 살아갔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오지 않기를 바랐지만 결국 오고야 말았다. 원작에 따라 그가 죽는 날이. 하늘은 여주인공의 하루를 예견하듯 잿빛 구름으로 뒤덮여 있었고, 바람은 따스한 봄날에 어울리지 않게 차갑게 불어왔다. 이 세계의 날씨는 여주인공의 하루를 가장 정확히 나타내기에, 상희는 결국 받아들였다.
원작대로 프레제가 잠들었다. 하지만 상희는 깨어있었기에 그가 자신을 납치하기 위해 찾아올 것을 기다리며 주먹에 힘을 주었다.
‘손톱깎이로 손톱을 자르지 않았다면 살을 파고들어 피를 냈을 텐데, 제파르가 피냄새로 알아봐 줬을텐데.’
깔끔하게 다듬어진 손톱은 살을 파고들지 못하고, 자국만을 무수히 새길 뿐이었다.
(중략)
원작대로 남주인공이 찾아온 것이다. 그는 여주인공을 납치하려던 흑막을 처단하는 것에 성공했고, 나약한 여주인공의 몸은 그 상황을 버티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그녀의 세상은 그렇게 끝이 났다.
아무런 반전 없이.